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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미우호상 주인을 찾자

창립 62주년을 맞는 한미 교류 민간단체인 한미협회가 설립자인 고 이원순(1890~1993) 전 회장의 미국내 자손들을 찾고 있다.   협회는 지난해 10월 한미우호상 수상자로 이 전 회장 부부를 선정했지만 한국에서 가족과 친인척을 찾지못해 본지에 부탁해 왔다.   이 전 회장은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의 뿌리인 동시에 대한민국 체육계의 은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10년 전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대한인국민회가 후원하고 민병용 한인역사박물관장이 집필한 ‘미주독립유공자 전집’은 그를 한인 최초의 부동산 백만장자이자 ‘독립과 민족’이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한 거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1890년 서울 출생인 그는 24세 되던 1914년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 전신) 법과 졸업 직후 하와이로 망명해 30년간 독립운동에 힘썼다. 초기에는 파인애플 통조림 공장 등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었지만 자동차 행상, 가구점 등 탁월한 사업 수완으로 돈을 모았다. 특히 하와이대학에서 부동산 중개 면허를 취득한 뒤 토지 매매로 부를 축적했다. 그에게 돈은 조국 독립을 위한 수단이었다. 이승만 박사의 측근으로 활동하면서 1928년부터 1943년까지 대한인동지회 회장으로 외교와 독립운동자금 조달에 힘썼다.     광복 이후 그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첫 올림픽 참가를 이뤄낸 역사다. 그는 1947년 스톡홀롬에서 열린 IOC 총회에 참석차 뉴욕에서 출국하기 위해 ‘사제 여권’을 만들었다. 미국 시민권자도 아닌데다 피신탁통치국 국민이었기 때문에 촉박한 시간내 여권을 받기 어려웠다. 그는 공문지에 나이, 본적, 주소 등 신상정보와 당시 미국 후생성에서 일한 부인 이매리의 경력까지 쓰고 조선의 올림픽 참가 필요성을 적었다. 비공식 여권이었지만 영국, 스웨덴, 덴마크 총영사관은 한국이 처한 상황을 감안해 비자를 내줬다고 한다. 그 여권은 현재 한국체육박물관에 문화재로 전시되고 있다.   그의 후손을 찾는 일은 우리 한인들의 몫이다. 그가 1993년 102세로 별세한 지 32년이 흘렀지만 각 지역 총영사관, 한인회가 함께 찾고자 노력한다면 어렵지 않다. 한미협회에 따르면 전 회장의 세 딸은 미주 한인들과 결혼해 줄곧 미국에 거주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 회장은 고 이희호 여사의 외삼촌이다. 그러니 이 전 회장의 세 딸은 이 여사와 외사촌 지간이다. 80대 중후반인 세 딸 중 두 딸은 쌍둥이다.   대통령 부부의 인척이고 쌍둥이인 80대 중후반의 한인과 그 후손은 어디서든 도드라지게 마련이다.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는다. 이 전 회장의 한미우호상 선정은 단순한 상패 이상이다. 그의 후손들에게는 애국 유산이자 한인들에게는 지켜야 할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다.사설 한미우호상 한미우호상 수상자 대한인동지회 회장 민병용 한인역사박물관장

2025-01-08

상패 주인 찾아 미국까지.. ‘한미우호상’ 후손을 찾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을 후손을 꼭 찾아 선대의 공로를 기억하도록 상패를 전달하고 싶다.”   한미협회(Korea-America Association·회장 최중경)가 한미관계 발전과 한국 근대화에 공헌한 고 이원순(李元淳) 초대 한미협회 회장의 자손을 미국에서 애타게 찾고 있다.     KAA는 한국과 미국의 우호 증진과 교류 확대를 위해 1963년 설립된 민간단체다. 이원순 회장을 시작으로 송인상, 정세영, 구평회, 한승주 등 주요 정·재계 인사들이 회장을 맡아 양국 간 활발한 교류를 주도해왔다.     KAA는 지난해 10월 22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제22회 한미 친선의 밤 행사를 열고 ‘한미우호상’ 수상자로 이 회장 부부를 선정했다. 하지만 시상대에는 이 회장의 가족 대신 그와 인연이 깊은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나와 대리 수상했다. KAA가 이 전 회장의 가족과 친인척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한국 내에선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KAA는 결국 미주 한인언론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지난해 말 본지를 찾아왔다. 김 이사장은 “KAA가 갖가지 네트워크를 통해 이 전 회장의 세 딸과 그 후손들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한국에선 연락이 닿지 않아 결국 미국을 찾아왔다”고 전했다. 그는 1981년 전국경제인연합에서 당시 고문이던 이 전 회장과 지근거리에서 일한 인연이 있다.     이 전 회장은 현대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한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1890년 서울 출생인 그는 보성전문학교 졸업 후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후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3.1운동 보고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하는 등 미국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활동한 그는 뉴욕에서 한미무역회사를 설립했으며, 미 의회에 한인이민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했다.     해방 직후인 46년 스톡홀름 국제올림픽 위원회 회의를 한 달 앞두고 조선올림픽위원회의 가입 종목 승인을 받기 위해 직접 유럽으로 날아가 활동한 무용담은 한국 올림픽사에 회자하고 있다. 이어 63년에 KAA를 창설해, 한미 교류에 헌신했다. 이런 공로로 한국정부는 91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93년 작고 후에는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외삼촌이다.     대리 수상자 김 이사장은 “한미 가교라는 든든한 역할을 하시면서, 조용히 티 나지 않는 버팀목처럼 수많은 후배에게 귀감이 된 분”이라고 이 전 회장을 회고했다.     부인 고 이매리(李梅利) 여사는 29년 하와이주립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와 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전회장에 앞서 83년 작고했다.   이 전 회장 부부에게는 외아들이 있었지만, 한국전에서 전사했다. 세 딸은 아그네스, 마리안, 릴리안 이라는 이름 이외에 소재를 알 수 없는 상태다. KAA에 따르면, 셋 모두 미주 한인과 결혼해 미국에서 거주해온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80대 중 후반이다. 그 후손들도 여전히 미국에 거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김 이사장은 “일제를 벗어나 조국 근대화와 서울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헌신한 이 회장의 자손들에게 상패를 전달할 수 있다면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 부부가 수상한 상패는 미주중앙일보에 보관 중이다.     최중경 KAA 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한인사회의 소식을 속속들이 전하고 있는 미주중앙일보를 통해 이 전 회장의 자손들과 만날 날을 앞당길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연락처: 최중경 회장      ([email protected]),      본지:(310) 617-9795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상패 한미우호상 수상자 이원순 회장 회장 최중경

202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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